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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도플라밍고가 대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 베르고는 전례에 없을 정도로 정중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지금 나이의 절반이 겨우 넘던 시절부터 군주로서 모셔온 조커의 자리를 언젠간 꿰찰 거라고, 적어도 그렇게 행동할 거라고 의심하던 녀석이었다. 미호크는 그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응시하다 다시 서류 위로 시선을 옮겼다. 혹자가 피바람을 불러올 것이라 예상했던 진짜 즉위식은 조용하게 끝났다.
  미호크는 베르고를 비롯한 조커의 많은 슬하들에게 그런 부류의 의심을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권력에 대한 야망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를 상무이사의 자리로 끌어올린 것은 피에서 비롯된 갈망이 아닌, 순수한 피였다. 높은 직책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맡은 일은 성실하게 수행해내는 그 이상한 기질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언제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그는 절약적인 사내였다. 무슨 일을 시키든 묵묵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처리하리라는 것을, 조커는 알고 있었다.
  조커가 동업을 제안했을 때 미호크는 어떠한 손익도 계산하지 않았다. 지금과 비슷한 온도지만 훨씬 혈기왕성할 때인 이십대의 미호크는 남은 생애를 얼마나 재밌게 보낼 수 있을지, 그것만을 헤아렸다. 그는 뺨부터 흘러내려 셔츠를 질척하게 적시는 피에는 별달리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게, 미호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게 그의 전신에 퍼져나간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였다. 다만 미호크에게 있어 핏줄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그의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든 진실엔 아무런 영향도 없다. 확정된 삶이란 그런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가 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은 많지 않았다. 더불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했을 때,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였다.
  너, 흥미롭군. 조커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 미호크는 손끝에 걸린 타깃의 머리카락을 뜯어내고 있었다. 주인의 선혈을 머금은 머리카락은 미호크의 살갗에 끈질기게 붙어왔다. 미호크는 감흥 없는 시선으로 조커를 마주했다. 뜨거운 피가 뺨을 따라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짙고 새카만 눈동자가 보였다. 대부가 새로 들였다는 애송이가 이놈이던가. 겨우 두 살 차이지만 당시엔 새파랗게 젊은 놈이었다.
  보스가 널 많이 아끼는 것 같던데. 뭘 시키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처리하다고 들었어. 그게 진짜 강한 거지. 아니야? 미호크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도플라밍고의 뒤에 따라붙은 그림자 같은 녀석을 힐끗 보았다. 조커가 시킨다면 두말없이 당장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미호크는 고개를 살짝 들어 도플라밍고를 쳐다보며 말했다.


 원하는 게 있나?


 도플라밍고는 대화가 빠른 남자였다. 그는 더 이상 사족을 붙이지 않고 간결하게 말했다. 손을 잡자고. 초대 대부는, 그러니까 보스 리쿠는 물러터져서 드레스로자에 불필요한 손해마저도 인의로 치부하고 있다고. 그는 거기까지 말했다. 미호크는 잠시 고민했다. 긴 시간동안 치밀하게 움직여 절대적인 자리에 올라선 대부를 몰아내자. 도플라밍고는 진지하게도, 가능성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뭐, 어떤 일이 있어도 대부가 되는 건 나다. 조커는 손을 잡자며 그렇게 말했다. 치기와 독기가 어린, 하지만 결코 낯설지 않은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미호크는 손을 맞잡았다. 서늘한 체온이 뒤섞였다.
 야망이란 미호크와 거리가 먼 단어였다. 누구를 발밑에 두고 어떤 이를 무릎 꿇리겠다. 죽거나 죽여야만 하는 이 지옥 같은 곳을 탈출하겠다. 미호크에겐 그런 꿈이 없었다. 그래서 삶엔 열정도 후회도 없었다. 그게 조커의 손을 잡을 수 있게 만들었다.
  미호크는 아버지의 목울대를 가르는 자신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했다. 옛 드레스로자의 회장이었던 이의 멱살을 잡아 올려 차갑게 질문하는 조커의 모습 또한 선명히 기억했다. 그래. 이곳은 혈연조차 성립하지 않는 공간. 미호크의 손에 목숨이 걸린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후회하지 않아. 이렇게 살아간 것도, 널 낳아 키운 것도. 이게 업보라면, 이게 삶의 대가라면 마땅히 치러야지.
  대부시여. 그때 미호크는 아버지의 목을 그었다. 다소 긴 편인 나이프가 예리하게 훑고 지나간 자리가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아버지의 좁은 방에서 나오자 조커도 그를 따라 나왔다. 진짜 아버지 목을 그었어? 너도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런 놈은 아니구나. 미호크는 그때 처음으로 중지를 치켜들었다. 자리에 잠시 멈췄던 도플라밍고는 곧 아무렇지도 않게 그의 뒤를 쫓았다.
  수고했어. 전무이사 쥬라클은 리쿠의 큰 전력이었으니까. 처리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처리 당했을 거야. 날이 고정된 나이프 끝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미호크는 생각했다. 그런 건, 어찌되든 상관없다고.

 삶의 불공평함에 불평해도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바꿀 수 없었다. 이곳은 개미지옥 같은 곳이었다. 어쨌거나 미호크의 호흡을 지탱하는 건 어제 그에게 나이프를, 때론 총구를 들이 밀던 이들의 호흡이었다. 그들은 이 아이러니한 모든 상황이 꺼려질 것 없이 성립되는 현대의 공간에 담겨 있었다.
  손을 잡은 조커가 진행하는 모든 일엔 불만이 없었다. 그는 그의 패밀리보다도 미호크를 신뢰했다. 이미 한 번 배신했던 장군의 목은 미리 잘라야 한다는 말도 있었지만 중요한 임무는 언제나 미호크의 몫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것들은 언제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미호크가 그렇게 만들었다. 조커가 신뢰했던 것은 모든 걸 정량대로 깔끔하게 해내는 그 기질이었다.
  자정이 되기 전까지, 오늘 할당된 모든 호흡을 온건히 뱉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모자람 없이, 그러면서도 넘치지 않게. 곧 베르고가 올 것이다. 미호크는 자신의 책상 앞에 똑똑히 올라간 명패를 응시했다. 상무이사 쥬라클 미호크. 전대 대부가 범죄자에게 내려준 최대한의 직책이었다. 불만은 없었다. 만족도 없었다.
  그럼에도 미호크는 삶에 대한 갈증만큼은 누구보다도 뚜렷한 사람이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미호크에겐 크게 두 가지 정도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순응과 죽음. 미호크는 순응을 택했다.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곤 하는 의미의 순응과는 성질이 달랐다.
  미호크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살아감에 있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인간이지만, 질긴 인간의 명줄만큼은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기꺼이 주어진 인간들의 호흡을 빼앗고 그들의 명줄을 잘라낸다는 것을 말이다. 살고자 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오든 처리할 수 있고 세간과 대부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든 살아남을 수 있다. 생각보다 다사다난한 생애가 아니었다. 그저 업보를 쌓는 것만으로 미약한 목숨을 지탱할 수 있었다.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내일 뱉을 호흡의 정량이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미호크는 살아남았다. 대부의 시대가 바뀌면서 숙청된 수많은 사람들을 딛고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미호크는 읽고 있던 한 해의 보고서를 잠시 내려놓았다. 회사의 어떤 부서도 도태되지 않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꾸준한 산처럼 기록된 그래프가 덮였다.
  베르곱니다. 대답하지 않자 문 너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호크는 눈을 감았다. 알고 있었다. 문 밖의 상대가 베르고라는 것도, 그리고 왜 왔는지도. 들고 있던 보고서를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들어와.

그는 단조롭게 말하며 감았던 눈을 떴다. 겹겹이 칠해진 눈동자가 천천히 나타났다. 해가 지자 사무실엔 어둠이 내려앉았다. 금안이 반짝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베르고는 잠시 숨을 들이키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미호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조커께서 부회장직을 추천하셨습니다. 문 근처에서 말한 베르고는 가까이 다가와 책상 위로 금빛 배지를 내밀었다. 미호크는 옷깃에 달려있던 리쿠의 배지를 천천히 뜯어냈다.
어쩌면 이런 일보다는 더 잘 어울리는 일이 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절약적으로 나이프를 휘둘러 인간의 숨통을 끊어내고 업보를 쌓는 것보다는,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미호크는 리쿠가 배분한 배지를 들고 오른손을 내밀었다.
 베르고가 손을 내밀자 가벼운 금속제 배지를 툭 떨어트렸다. 베르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미호크는 무표정하게 그를 내려다보았다. 베르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무적인 표정으로 일관했다.
 삶이 그를 부회장의 자리까지 끌어올렸다.
 베르고가 문고리를 잡았다. 이제 드레스로자에 불어 닥친 피바람은 이사를 넘어 중간관리직까지 들이닥칠 것이다. 수많은 이들이 대부의 이름아래 척결당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다. 미호크는 베르고가 문을 열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부한테 축하한다고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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