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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錯覺)

 

나쁜 게 뭘까. 좋고 싫은 건 있어도 착하고 나쁜 건 모르겠어.

/ 김하늘, 나쁜 꿈.

 


 생채기 투성이의 얼굴을 두터운 손이 끌어당긴다. 몇 번이나 바닥에 구른 듯 힘겨워 보이는 사내는 뿌리칠 힘이 없다. 비뚜름히 올라간 새빨간 선글라스에 끌어올리어지는 입꼬리. 트라팔가의 턱을 우악스럽게 쥔 도플라밍고가 웃는다. 로우. 도망다니는 건 즐거웠나?

 돈키호테 패밀리가 서울지역 조직을 통합한지 22년. 살아남고자 발을 들일 때는 언제고 또 살아남고자 이 세계를 벗어나려 한다니 아이러니하지 않던가. 도플라밍고가 낄낄대며 회상한다. 자신을 패밀리에 넣으라며 아주 당차게 외치던 퍽 귀여운 로우를.

 

 트라팔가는 돈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바깥과 단절된 시골길을 다 까진 발로 뛰고 뛰어 서울까지 가는 차에 몰래 탔다. 조선시대도 아니었는데 역병으로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죽었다. 산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애새끼였던 트라팔가는 살아야했다. 이유를 정확히 할 수 없어도 인간에게 본능으로 존재하는 삶에 대한 집착과 같은 것이었다.

 열댓 살이 채 되지 않은 아이에게 덜컥 큰 돈을 쥐여 줄 수 있는 판은 그런 곳 하나밖에 없었다. 더럽고 더러운 곳. 매일 한 순간에라도 방심하면 목이 그이는 곳. 심장이 꿰뚫리거나 머리가 날아가는 곳. 살기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의사를 꿈꾸던 트라팔가에게는 곧 사망과도 같은 것이었으나 결국 벌레처럼 좀먹고 오르는 본인의 생존욕구 앞에 무릎 꿇었다.

 패밀리의 수장 도플라밍고의 친동생이라는 돈키호테 로시난테가 오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날은 트라팔가가 처음 사람을 죽인 날이었다.

 도플라밍고는 트라팔가에게 로시난테를 아주 소중한 동생이라 소개했고 로시난테는 대답하지 않았다. 끼고 있던 가죽 장갑을 벗어 휴지통에 버린다. 검은색이라 잘 보이지 않았는데 휴지통 안 흰 비닐에 잔뜩 붉은 것이 묻는다. 트라팔가가 알게 모르게 숨을 들이키는 것을 로시난테는 보았다.


 그리고 한 달 뒤, 트라팔가는 로시난테와 함께 잠적한다.


 **


 트라팔가가 병이 나은 채 발각되었다는 십 년에 가까운 훗날. 그를 전력을 다해 찾지도 않던 도플라밍고가 어쩐 일로 로우의 주거지역에 직접 걸음한 날. 필사적으로 도망다녔는지 엉망인 얼굴. 그럼에도 저를 죽이기라도 할 것 같은 눈에 도플라밍고는 웃음이 난다. 위협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설설 기는 꼴이 즐거워 십 년이나 제대로 잡지 않고 굴렸더니. 아주 기어오르는구나. 로우. 앞말은 삼키고 기어오른다는 문장부터 뱉는다. 트라팔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당신은 내 위였던 적이 없다. 도플라밍고여.”
 “즐거웠느냐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는군.”


 그래서 로시난테는 어디에 있지? 함께 있다는 보고를 들은지도 한참 되었는데.


 트라팔가가 입술을 다문다. 어째서?


 “로시난테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로우.”
 “.... .... 죽었다.”


 도플라밍고의 미간이 좁혀진다.


 “아버지는 손으로 죽였다면서... 친동생의 죽음에 동요하는 건 우습지 않나?”


 그것도 네가 보낸 새끼한테 죽은 건데. 시선조차 피할 틈 없이 잡힌 상황에서도 그것은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순간 도플라밍고는 트라팔가의 턱을 틀어쥐었던 손을 놓는다. 허리를 곧게 편다. 로시난테는 강하니 위협쯤에는 죽지 않을 거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나. 하긴 담뱃불을 붙이다 집도 태워먹을 뻔한 적이 여러 번이니 그럴 수 있겠지. 그럼 죽었단 말인가. 이어지는 상념들. 허탈하게 웃는다. 틈을 타 총을 장전하려는 트라팔가의 총구를 걷어찬다. 고개를 내린다. 검은 정장에 붉은 넥타이가 트라팔가는 도플라밍고를 처음 만난 날부터 끔찍하게 싫었다.


 “사탕처럼 굴려먹을 필요는 없었나보군. 트라팔가 로우.”
 “그걸 이제 자각했나보군. 도플라밍고여.”


 도플라밍고는 트라팔가를 으깨서 씹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본인에 대한 끔찍함이라 애써 생각하지는 않는다. 탓을 한다. 그게 가장 살아남기 쉬운 방법이니까. 세상이 더러운데 자기 가족만 깨끗해져보려 애쓰던 아버지는 오히려 가족을 더 더러운 소굴로 밀어 넣었으니 살아 목숨을 구걸해서는 안 되었고, 감히 친동생을 죽게 내버려둔 트라팔가는 오늘로 명을 달리한다. 그 뿐이다. 저가 죗값을 치룰만한 얘기는 빼고 생각하고 사유한다. 도플라밍고는 그렇게 돈키호테 패밀리의 수장이 되었다.

 저항할 힘도 없는 트라팔가의 가슴팍을 구둣발로 짓누르고 품에서 총을 꺼내 장전한다. 머리에 겨누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겁고 탁한 총기의 방아쇠에 검지를 올리고. 여전히 비웃음인 채 저를 올려다보는 트라팔가의 낯짝을 보고 욕설을 짓씹고. 그리고. 트라팔가의 최후라는 생각을 하고.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이 울리는 총성.


 그것이 제 심장을 관통했다는 확신과 함께. 도플라밍고는 무너져 내린다.

 

 “도피.”


 로시난테.


 “죽었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믿을 줄은 몰랐는데.”
 “... ... 사람은 가끔 신빙성 없는 말을 믿곤 하지.”


 셔츠를 적시고 울컥 쏟아져 나오는 핏물을 보며 도플라밍고는 허망한 죽음을 예감한다. 시멘트 잔해가 쏟아진 바닥에 등이 차다. 새빨간 선글라스 너머로 걸어오는 제 동생을 바라본다. 그가 트라팔가를 일으킨다. 부축한다.


 “로시.”


 걸어 나가던 두 사람이 멈춰선다.


 “가족을 죽인 기분은 어떤가.”


 아주 끔찍하지 않나. 아주 끔찍했지. 도플라밍고가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소리를 낸다. 어둠속으로 트라팔가와 로시난테가 사라진다. 바닥을 울리는 걸음걸이가 그 둘 밖에 없다. 아무도 찾지 않을 제 마지막을 우습고 우습게 생각하며 도플라밍고는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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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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