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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한산한 도로 위로 물안개가 가득 내려앉았다. 에이스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뿌연 시야에 날을 잘못 잡은 것인가 생각하다 이내 총을 한 번 더 손질했다. 이미 여러 번 확인하고 점검한 뒤였지만 다시 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이 와중에 낮은 기온 때문인지 몸이 떨려왔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손안에서 제 온기를 빼앗고 있는 묵직한 총이 몸을 긴장시켰다. 늘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만 오면 저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만다. 온몸을 옥죄는 긴장감에 숨을 내뱉으니 하얀 입김이 공중으로 흩어진다.
벌써 이곳에서 기다리는지도 1시간째. 의뢰내용대로라면 아까 이 도로를 지났어야 했던 대상은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일이 틀어진 것일까. 아니면 눈치채고 다른 길로 간 것일까. 갑자기 몰려오는 피곤함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냥 돌아갈까. 괜히 마음에도 없는 생각을 하며 오토바이의 라이트를 켰다 끄기를 반복하던 순간이었다. 절벽을 둘러 휘어지는 도로 끝에서부터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lucky“

찌푸렸던 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펴졌고 그의 입가에는 즐거운 듯 웃음기만 가득했다. 얼마 안 가 곧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에이스를 발견한 상대는 속도를 늦추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금 속도를 높인다. 생각이야 뻔했다. 속도를 높여 치어죽이려는 시도일 것이 분명하다.

‘악감정은 없지만 일이니깐’ 

에이스는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자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렇지만 적이 많고 죄도 많고, 돈도 많은 치들은 집이며 차며 모두 방탄유리로 해놓은 것이 대부분. 굳이 총알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환한 라이트에 눈이 부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거리가 되었을 무렵, 앞으로 쭉 뻗었던 손을 아래로 내려 그대로 타이어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발사되면서 총을 잡고 있던 손에서부터 충격이 와 닿았다.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한 손으로 총을 쏘는 장면은 다 엉터리다. 이런 충격을 한 손으로 받아낸다면 분명 어깨가 빠지고도 남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어깨가 욱신거렸을 테지만 이제는 익숙해져 그저 뻐근한 어깨를 한 번 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터진 타이어에 벤츠는 크게 휘청거리더니 이내 절벽 쪽으로 방향이 비틀어졌다. 그리고 곧 큰 소리와 함께 벤츠는 절벽에 부딪히며 몇몇 부속품들이 부서져 튕겨 나왔다. 에이스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차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운전을 하고 있던 남자가 차 문을 열며 에이스를 향해 총구를 들이댔다. 물론 그것은 시도에 그칠 뿐이었다. 에이스는 망설임 없이 남자의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에이스는 제 앞으로 고꾸라진 남자를 밟고 나아가 뒷좌석으로 향한다. 창문 너머로 머리에 피가 좀 흐르는 것만 빼면 꽤 멀쩡해 보이는 타겟이 창문 너머로 보였다. 톡, 톡. 장난스레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리자 타겟은 화들짝 놀라 하며 어떻게든 도망치려 몸을 움직인다.

“헛수고예요. 회장님”

장난기 반, 비아냥 반이 섞인 말투로 말하며 차 밖으로 내리려는 타겟을 다시금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연 그의 입으로 총을 쑤셔 넣는다.

“전 시끄러운 거 싫어해서요. 뭐 별말 있겠어요? 누가 보낸 거야? 얼마를 원해? 이런 말이나 하시겠죠. 그렇죠? 자, 그럼 그 옆에 있는 가방 좀 열어보실래요?”

물건 확인해야 해서요. 내가 좀 철저한 성격이라. 협박 어린 에이스의 말에 남자는 덜덜 떠는 손으로 가방을 열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하얀 가루들이 담긴 봉투들이 가득 있었다. 물건을 확인한 에이스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요. 이제는 가방을 닫아요”

이번에도 남자는 에이스의 말에 가방을 닫았다. 에이스는 가방이 닫히자마자 품에 넣어두었던 주사기를 꺼내 들었고 남자는 말릴 새도 없이 자신의 목에 꽂힌 주삿바늘에 눈을 크게 떴다.

“아프진 않을 거예요”

죽는 순간에도. 그렇게 남자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자신을 바라보며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이는 에이스의 표정이었다. 

에이스는 정신을 놓은 것 마냥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헤실 웃는 남자를 빤히 바라보다 그의 옷 안을 뒤적거렸다. 역시 대기업 회장님이라 그런지 주머니 곳곳에서 돈이며 금반지며 별것이 다 나왔다. 그러나 에이스는 그것들을 주머니에 도로 넣었고 결국 꺼낸 것은 고급스러운 라이터였다. 에이스는 라이터의 불을 몇 번 껐다가 키더니 이내 불을 켠 상태에서 차 안에 떨어뜨린다. 그러자 불은 서서히 차 안의 카펫을 태우더니 곧 타겟에게로 달라붙었고 그 불은 잠시 뒤, 차 전체를 휘감았다. 불이 타겟을 태우는 그 시점부터 에이스는 차에서 떨어져 자신이 타고 온 오토바이로 가 있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뜨거운 불에 휩싸여 타오르는 차를 바라보다 곧 폭발할 것 같은 기분에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괜히 이런 상황에 오래 머물러봤자 좋을 것이 하나 없었으니 말이다. 차에서 멀어질 무렵 뒤에서 큰 폭발소리와 함께 불길이 번쩍이며 치솟았다.


-

 


“나 왔어요. 허니”

“그거 지금 나 따라 하는 거예요?”

방 안으로 들어오며 장난기가 어린 말을 하는 에이스에 TV를 보던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나한테 이런 느끼한 말을 하는 건 너밖에 없는걸”

“그렇게 느끼했어요?”

“아주 많이”

에이스는 능청을 떨며 남자의 옆자리에 풀썩 몸을 눕히듯 앉았다. 그러자 남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품 안으로 에이스를 끌어당긴다.

“이야, 소식 빠르네. 벌써 뉴스에 나온단 말이야?”

“제가 힘 좀 썼어요. 저런 소식은 빨리 퍼지는 게 이득이거든요”

TV에서는 약 한 시간 전에 절벽 도로에서 사고가 나 불에 타죽은 대기업 회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의 차 안에서는 다량의 마약이 발견되었고 곧 부검 결과에 대한 소식도 나오면서 세상을 들썩이게 할 것이다.

 

“마약을 유통하고 심지어 본인도 마약에 찌들어있던 회장이라니. 볼만하지 않아요?”

“그래, 그래. 그리고 저 회장님은 네가 그렇게 싫어하는 의원님에게 뒷돈 대고 있었잖아”

남자는 작게 소리 내 웃으며 에이스의 까만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에이스는 그 손길이 나쁘지 않아 가만히 자신의 머리카락을 내어주며 힐끗, 그를 바라보았다. 사보. 곧 최연소 국회의원이 될 남자. 그는 젊은 나이에 맞게 혈기왕성했고 그의 열정은 지금의 사회를 들뜨게 하였다. 젊은 층에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었고 배경 역시 꽤 부유했기에 동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물론 저 잘생긴 얼굴도 한몫한 것도 사실이었다. 확실히 자신이 보더라도 사보는 무척 잘생긴 축에 속하니 말이다. 그래 봤자 에이스의 눈에 그는 괴물이었다. 저 말끔하고 귀티 나는 얼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던가. 물론 그는 직접 손쓰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살인을 대신 맡아준 이는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더러운 위선자. 

끔찍한 살인자.


에이스는 굳이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번 일만 하더라도 그의 속셈은 뻔했다. 의원의 뒷돈을 봐준 회장이 알고 보니 마약 유통자에 중독자였다. 그렇다면 그의 도움을 받고 있던 의원 역시 의심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번 당선에 그의 입지는 더 단단해질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얼마나 챙겨 먹은 거예요”

“...쉿. 비밀이야”

평소에도 알고 있으면서 꼭 물어본단 말이지. 에이스는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아까 일을 처리했을 때 회장의 차 트렁크에 있던 돈 가방으로 몰래 슬쩍 했던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일만 잘 처리했으면 됐지. 보너스 챙기는 건 오로지 자신의 몫이었고 그가 굳이 신경 쓸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사실쯤은 에이스도 알고 있었다. 능구렁이 같으니. 에이스는 사보의 품에서 몸을 돌려 그의 가슴팍에 안기듯 달라붙었다.

“우리 도련님”

도련님이라는 말에 사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련님이면서 왜 이렇게 도련님이라는 말을 싫어하는지. 에이스는 이 말 또한 속으로 삼키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사보의 일그러진 표정을 단숨에 필수 있는 방법은 간단했다.

“키스해줄까?”

뒤이어 이 말을 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사보의 표정은 부드럽게 변한다. 이럴 때 보면 알기 쉬운 남자와도 같았다. 에이스는 제 허리를 감아오는 손에 몸을 맡기며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 때면 자연스럽게 사보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기울여 입을 맞춰온다. 서로의 혀가 엉키고 설킨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릴 무렵, 점점 몸은 뒤로 눕혀졌고 결국 두 사람은 소파 위로 몸이 겹쳐 넘어졌다. 에이스는 제 위로 버티고선 사보를 바라보았다. 그가 등지고 있는 조명에 밝은 금색의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잘생기긴 정말 잘생겼단 말이지. 그래서 그런지 키스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아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사보의 입술을 삼켰다.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으면 큰 손이 허벅지를 쓸어 만진다. 결국, 사보는 제 욕망에 못 이겨 에이스의 벨트를 풀어헤친다.

 


-


시끄러운 음악 소리. 엉겨 붙은 지독한 살 내음 냄새와 약을 태우는 냄새.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지저분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은 마치 난잡한 마약 굴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 공간은 에이스의 유일한 안식처이기도 했다. 냄새나고 시끄럽고 더러운 이곳은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다. 에이스는 공간 한가운데에 마련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옷 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자 언제 온 것인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남자가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이곳에 있는 이상 에이스가 누구인지 모를 수는 없을 것이다. 이곳에 주인이자 여기 모인 모두의 리더였으니 말이다. 그런 자신에게 다가와 추파를 던지며 무언가를 원하는 눈빛을 보낸 다라. 에이스는 웃음이 났다. 자신을 우습게 본 것일까. 여기서 당장에라도 이 남자의 머리에 총구멍을 낸다 해서 자신에게 총구를 들이댈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남자는 이런 에이스의 생각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키스를 요구했다. 욕심 많긴. 에이스는 제 손에 들린 담배를 입에 물더니 양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담배를 빨아들인 후, 폐와 입안에 가득 차있는 연기를 남자의 얼굴에 뱉어냈다. 그리고 곧 그의 욕심을 기꺼이 받아준다. 질척일 정도로 달려들어 제 입을 탐하던 남자는 옷 위를 손을 더듬거린다.

이미 주변은 난잡하고 문란하다. 그 가운데 남자 둘이 들러붙는다 해서 신경 쓸 이들은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쾌락을 즐기면 그뿐. 그렇게 몸을 뒤로 눕히며 옷을 벗어젖히려던 그 순간 그들만의 공간에 낯선 이의 발걸음이 닿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멈추지 못할 것 같은 행동들을 짜 맞춘 것처럼 멈춘 순간이기도 했다. 묵직한 구두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낯선 이의 발소리가 점점 커질 때마다 에이스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에이스와 남자가 앉아있는 소파의 반대편에 있던 의자로 걸터앉은 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저 눈만 마주쳤을 뿐이건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에이스는 애써 티를 내지 않으며 여유롭게 말을 건넸다.

“앞 손님이 있어서”

뒤에 온 사람은 기다려야 할 거야. 말하는 순간에도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렇게 만들었다. 대체 왜 저 남자가 이곳에 온 것일까. 설마 다 알고 온 것일까. 에이스는 최대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의 눈치를 살피며 보란 듯이 겁에 질려있는 남자를 끌어당겨 다시 키스하려던 그때였다. 커다란 총소리에 귀가 먹먹했다. 순간 심장이 멈춘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에이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얼굴에 잔뜩 틘 피를 닦아낸다.

“이제 나랑 이야기 좀 해볼까?”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입술을 비벼대던 이의 머리가 터져 죽었다.

“하, 미친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에이스는 자신의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저 바보 같은 머리스타일 하며 얼굴 생김새, 자신보다 훨씬 큰 덩치. 자신이 외우고 또 외웠던 이들 중 한 명이다. 최대한 안 마주치길 바랐건만 결국 마주하고야 만다. 

“의뢰를 좀 할까 해. 이 바닥에서 꽤 유능하다고 소문났던데”

“맞아. 내가 좀 유능해. 그런데 그쪽 의뢰는 안 받아줘”

“받아줘야 할걸”

그동안 네가 우리한테 손해를 끼친 게 얼만데. 남자의 말에 에이스는 앓는 소리를 내었다. 역시 다 알고 온 것이다. 자신이 사보의 의뢰로 인해 한 일 중에 저 남자의 조직에 끼친 손해가 크다는 사실쯤이야 알고 있었다. 러시아를 휘어잡고 있는 에드워드 뉴게이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조직. 그의 조직은 기업과 정치 쪽은 물론 심지어 의료계 쪽에도 손이 뻗쳐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조직이었다. 그리고 의료계의 꼭대기에 서 있는 남자가 바로 마르코라는 이 남자였다. 웬만한 의사들은 이 남자의 말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그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물론 평범한 병원의 이미지 유지를 위해 일반인들에게는 일반 병원들처럼 치료해준다. 하지만 정치 쪽, 기업 쪽, 그리고 이 밑바닥에서 구르는 이들은 달랐다. 그의 눈치를 보며 벌레처럼 기어야만 했고 칼을 맞고, 총을 맞더라도 제대로 치료를 받고 산 이들은 거의 없었다. 자신의 애들 또한 그렇게 해서 죽은 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기에 사보의 의뢰를 받아들인다는 명목 아래 그들에게 큰 손해를 끼쳤다. 그리고 지금, 그 순간들이 조금 후회되었다. 아니, 아주 많이. 후회됐다.
마르코의 손짓 하나에 검은 정장을 입은 이들이 건물 안으로 몰려들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건물 안은 순식간에 초토화가 되어버렸다. 깨진 술병들, 핏자국으로 가득한 바닥, 찢어지는 비명.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미리 말 맞춘 듯 에이스만은 피해서 총을 난사했다. 에이스는 그제야 현실을 깨닫고 몸을 일으키며 품에서 총을 꺼내 마르코를 향해 겨누었다. 마르코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총의 방아쇠가 당겨지기 전에 에이스의 손목을 꺾으며 그의 옆구리 쪽에 총구를 겨눈다.
탕-
여전히 소음기가 장착되지 않은 총에서 큰 소리가 나며 옆구리에 총알이 박혔다. 에이스는 살이 꿰뚫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옆구리를 손으로 눌렀다. 마르코는 자세가 허물어진 에이스의 어깨를 잡아 소파 위로 그를 짓눌렀다. 그렇게 건물 안에 있던 모두가 죽고 제압당한 시간은 단 10분 남짓이었다. 에이스는 분하고 억울한 듯 새빨개진 얼굴로 마르코를 노려보았다. 그렇지만 노려본다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 없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다 하더라도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구멍 따위는 없어 보였다. 

“젠장”

그나마도 겨우 목숨을 부지해 살아남은 이들을 모두 무릎이 꿇려진 채 바닥에 머리를 처박힌 상황이었다. 

“이제 받을 의향이 좀 생겼나?”

“...내가 졌어. 그러니깐 더는 아무도 죽이지 마”

그깟 의뢰, 받아줄 테니까. 의뢰를 받아준다는 사람치고는 날이 잔뜩 선 상태였다. 그러나 마르코는 상관없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의뢰인지는 몰라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 재수 없는 면상에 총구멍을 여럿 내줄 것이라 다짐한 에이스는 일단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잠시 무릎 꿇기로 했다.

“근데 내가 진짜 아파서 뒤질 것 같아서 말이야. 이러다 그쪽 의뢰받아주기도 전에 죽으면 어떻게 하지?”

에이스는 덜덜 떨리며 경직된 입술을 겨우 움직여 최대한 웃는 모양새로 말했다. 그러자 마르코의 눈썹 한쪽이 치켜 올라간다. 그러다 이내 에이스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는 에이스를 누르고 있던 손을 떼어내며 제 품에서 초록색의 천 뭉텅이를 꺼내 들었다. 에이스는 순간 저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천을 펼치자 보이는 수술도구들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이곳에서 제 배를 꿰매겠다고? 에이스가 거절하기도 전에 마르코가 선수를 쳤다.

“지금 마취제가 없어서 말이지”

잘 참아내요이. 에이스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그의 입에 수건을 물리며 작은 병에 담긴 소독약을 상처에 부어버린다. 순간 에이스는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을 놓을뻔한 것을 겨우 버티며 이를 악물었다. 뚫린 곳을 망설임 없이 헤집으며 총알을 꺼내는 행위에 핏줄들이 바짝 설 정도로 몸에 힘을 주었다. 억눌린 신음이 한참 이어질 무렵, 피로 얼룩진 총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에이스는 겨우 숨을 몰아쉬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진짜 아파 죽을 것 같아. 에이스는 흐려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아, 진짜, 아파서, 뒤질 것 같아요. 선생님”

“뭐?”

지금 어쩐지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서. 이 상황에서도 오기를 부리는 것일까. 마르코는 어이가 없었다.

“선생, 님”

아파요. 살살해주세요.

“이런 거 싫어하시나? 우리 의사 선생님은?”

“취향 아니야요이”

“그래도 선생님 제발 살살 부탁해요. 진짜 아파서 뒤질 것 같아”

결국, 마르코는 웃음을 터뜨렸고 에이스의 볼을 톡톡 두드리며 꽤 다정하게 속삭였다.

“조금만 더 버텨요. 환자분”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피고 고인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마르코는 아무렇지 않게 제 마음이 동하는 대로 에이스의 입술에 제 입술을 짓눌렀다. 에이스는 그런 마르코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짧은 입맞춤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놓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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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루끼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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